한옥교회 손수 짓는 정훈영 목사
축사 빌어 농사 거들고 짓고 어느듯 17년

전도는 이슬처럼 젖듯 말듯 어느새 ‘단비’



누구일까. 이 시골에 저렇게 아름다운 한옥을 짓는 이는. 천안시 북면 병천천을 따라 골짜기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한옥이 숨어있다. 북쪽은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쳐 고난받는 민초들의 아픔을 보듬어주었던 어사 박문수의 묘가 있는 은석산이고 남쪽은 흰구름 머금은 운봉산이다. 마치 객들을 환영하듯 길가에 늘어선 나무 터널을 지나 운봉산 아래 서있는 한옥이다. 한옥 기와에 입혀진 색이 곱다. 어느 대갓집보다 큰 기와집이지만 위압적이기보다는 평안하다.
 
단비교회 정훈영(46) 목사가 6년째 손수 지어온 한옥교회다. 땀으로 쌓아온 한옥 앞에서 정 목사는 입을 실룩이며 수줍은 듯 옆으로 비켜선다. 잘 다듬은 도시의 정원수가 아니라 거친 들판에서 비틀어지고 쓰러지면서 서로를 보듬어주는 생명 본연의 표정이다. 정제된 증류수라기보다는 갈라진 목을 적셔주는 막걸리같은 그의 어디에서 이렇듯 깔끔한 한옥을 지어내는 마음이 숨어있는 것일까.
 
한 해 두 해 세 해…, 머슴처럼 일하자 농사꾼 이웃으로 인정
 
정 목사에게 이곳은 목사로서 출발점이었다. 또한 종착점이 될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세상 젊은이들이 시골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갈 때인 17년전인 1992년 그는 연고조차 없는 이 마을에 들어왔다. 50여가구에서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만이 살아가는 마을이었다. 마땅히 머물 곳이 없던 그는 짐승들을 키우던 축사를 빌어 거처하면서 예배를 드렸다. 교인도 교회도 없는 마을에 나타난 젊은 목사 부부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평생 논밭에서 흘린 땀에 연륜이 켜켜히 배어있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그는 어쭙잖게 전도하려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않았다. 그냥 젊은이의 일손이 필요한 논밭으로 달려가 일을 도왔다. 논밭으로 돌아다니며 청하지도 않은 일을 자청했다. 농사철이면 부지깽이의 힘이라도 빌린다는 농촌이다. 들판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니 농사일이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처지에 힘깨나 쓰는 그는 농삿일이 힘겨운 동네 어른들에겐 구세주였다.
 
한 해 두 해 세 해…, 정 목사가 머슴처럼 논밭에서 일을 하자 ‘쓸만한 농사꾼’으로 여겼는지 마을 사람들이 논밭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시골에 별장이나 지어서 놀다가 내키지 않으면 돌아갈 그런 도회지 사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붙이고 살만한 사람으로 여긴 것이다. 정 목사는 그 때부터 자신의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농민들의 방식을 답습하지는 않았다. 그에겐 꿈이 있었다. 땅과 농민과 먹거리와 소비자를 동시에 살리는 생명농업의 꿈이었다. 그가 화학비료나 농약을 일체 쓰지않고 농사를 짓자 “그렇게 해선 농사를 모두 망치게 된다”면서 마을 사람들이 더 걱정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첫 해 농사가 잘 되었고, 수고한만큼 가격도 더 많이 받았다. 그러자 그의 설득이 먹혀들기 시작했고, 다음 해 다섯농사가 8천평에 유기농사를 함께 짓기 시작했다. 들판에서 땀으로 함께 하면서 교인들도 한명씩 두명씩 생겨났다. ‘고속 성장’을 지향하는 도시와 달리 이곳에선 1년에 한두명 늘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더욱 귀하고 소중했다.




축사교회에서 쫓겨날 처지 되자 비신자 할아버지도 꼬깃꼬깃 쌈짓돈
 
비록 축사교회지만 그렇게 막 자리를 잡을 즈음이던 2002년 축사의 주인이 땅을 팔아야겠다고 통보해왔다. 월 15만원을 받는 목사로서는 그 땅을 살 엄두를 내기 어려웠고, 대출을 받기 위해 저당 잡힐 재산조차 없었다. 꼼짝없이 이 마을에서 나가야할 처지였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할아버지들도 정 목사네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혀를 찼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들에게도 정 목사는 한마을 식구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염려 덕택이었을까. 그렇게 암담한 그들에게 단비가 내렸다. 축사에서도 쫓겨나게 생긴 그의 처지를 안 사람들이 십시일반 후원을 해온 것이다.  천행으로 땅을 구입했다.
 
10년 넘게 지내온 땅에서 쫓겨날 처지에 있던 정목사네가 그 땅 1500평을 산 것을 안 이 마을 최고령 할아버지가 정 목사의 부인 이애경 사모를 불러 앉혔다. 교회에 나오지도 않는 그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십만원을 주면서 말했다.
 
“내 생전에 이렇게 기분 좋아보긴 처음이유.  교회가 그 땅을 사게 돼서 이제 아주 이 마을에서 살게 됐으니 말이요. 이 돈 정 목사한티 줘유. 땅 사는데 보태지는 못해도 오매가매 기름값이라도 하게유.”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우리 할매에겐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교회에 열성인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그 마음을 싫어할 리 만무였다. 그토록 마을 어른들이 격려해주었지만 땅 구매만으로 모든 일이 끝날 수 없었다. 땅주인이 땅을 팔고도 축사 사용료를 요구했다. 결국 땅만 구매했지 축사 사용료를 낼 처지가 못되자 축사를 허물었다. 그러자 갈 곳 없는 정 목사네는 컨테이너 상자에서 지내면서 손수 흙집을 지었다. 지금 교회 겸 사택으로 쓰는 곳이다. 너와로 지붕을 얹은 지금의 토담집에서도 정 목사의 향기가 그대로 풍겨난다.
 
수도와 수련 하고싶은 이들에게 공동체센터로 내놓기로



정 목사는 가장 바닥에 있을 때 그 바닥에 천상을 그려내는 사람이었다. 생명농업과 어울리는 한옥교회를 짓는 꿈을 그가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2003년 실현에 옮겼다. 흙과 나무를 옮길 힘 외엔 가진 것이 없는 무모한 시도였다. 젊은날 목수 노릇을 했던 마을 할아버지를 모셔 식사를 대접한 뒤 그 할아버지가 손짓하는대로 짓다보니 그도 어느새 반목수가 되었다. 농사철이면 들판에서 일을 하고, 그 사이사이에 지은 한옥은 어느새 골격을 다 갖추고 내부 공사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 마을 인근 산위엔 우리나라 유일의 개신교여성수도자공동체인 디아코니아수도회가 있는데, 이 수도회는 2003년부터 이례적으로 정목사네 가족을 공동체의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한 공동체에서 같이 살지는 않지만 디아코니아의 영성을 실현할 가족으로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디아코니아수도회 안에서 살아가는 10명의 여성독신수도자들처럼 기도에만 전념하는 삶이 아니지만, 들판과 한옥건축 현장에서 땀흘린 ‘삶의 기도’와 아름다운 가족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애경 사모와 세 자녀인 정다우리(15) 산우리(13), 효비(8) 가족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정 목사네는 비록 수도자로 살아가지는 못하지만 수도와 수련을 하고싶은 가족들과 개인들이 언제든 와서 쉬면서 영성을 고양시킬수 있는 공동체가족센터로 한옥교회를 내놓을 계획이다.
 
상황이 어려울 때 더욱 경쟁의 가치에 매몰되는 세상사람들과 달리 가장 어려울 때 한옥교회의 꿈을 꾸었던 정 목사 부부의 자녀 교육도 남다르다. 다우리·산우리 두아이는 친구들이 중학교를 간 사이 집에 머물며 지낸다. 집에서 영어공부도 하고, 바이올린과 비올라고 켜고, 많은 책을 읽으며 틈틈이 아빠의 일도 돕는다.
 
“이제 다우리가 많이 커서 제법 도움이 돼, 옛날에 일 시킨다고 아이들 학교 안 보내는 부모 심정이 이해가 간다”는 정 목사의 유머스런 웃음이 욕망과 갈증으로 목마른 바닥에 단비처럼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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