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곳 연평도에 와서 아미쉬에 천착하는 이유는 아미쉬 신앙에 100% 공감을 해서라기보다는 아미쉬들이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말씀대로 사는 삶, 참으로 근본주의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함입니다. 세상 가치로 보면 실패한 저에게 그들의 소박하고 욕심 없는 삶, 말씀 그대로 사는 삶이 주는 위로가 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글로 소개드리겠지만 세례에 대한 너무나 엄격한 개념과 선교에 대한 개념 그리고 '메이둥'이라고 부르는 '회피 혹은 소외(shunning)' 관습에 대한 부분은 저와 생각이 다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아미쉬 신앙과 삶이 주는 '산 위의 등불'과 같은 빛은 '맛과 빛'을 잃어버린 현대 교회, 특히 한국 교회에 커다란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실린 사랑하는 부산 김기현 목사님이 쓰신 목사로서의 고뇌를 담을 글을 잘 읽었습니다. 김 목사님 글을 읽다가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서 목사라는 직분과 직업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 봅니다. 교회에서는 목사가 귀중한 직분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직업이기도 합니다. 인터넷이나 출입국 신고서 직업란 같은 곳에 군목이나 신학교 교수이면서 목사인 분이야 군인 혹은 교수라고 쓰면 되겠지만, 저는 목사라고밖에 쓸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러합니다.

그런데 아미쉬에게 이 말은 통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미쉬 목사들은 교회에서 월급을 받지 않고, 거의 대부분 농사지으며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터넷도 하지 않고, 선교를 위해서든 그 무엇을 위해서든 비행기 타고 외국 나들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출입국 신고서를 쓸 필요도 없기에 직업을 어디 기록할 이유도 필요도 없겠지만, 만일 아미쉬 목사가 직업을 기재할 일이 있다면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농부(farmer)'라고 기재할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미쉬 목사는 철저히 말 그대로 직분으로서의 목사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아미쉬 교역자 제도에 대해서 소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아미쉬 공동체는 보통 150~250명을 단위로 교회 교구를 구성합니다. 각 교회에는 감독 1명과 목사 1~2명, 집사 1명이 있습니다. 감독은 교회 최고 어른 역할을 하고 목사는 설교와 교인들 권면과 위로, 집사는 상호부조와 관계된 일을 맡습니다. 아미쉬 남자들은 세례(침례)를 받을 때 하나님이 선택하시면 누구나 기꺼이 교역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성경 열심히 읽고, 성경 공부 열심히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미쉬 교역자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고시 거쳐서 노회나 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경 전통에 따라 각 교구 교회 별로 기혼 남자로서 목회 서신에 나오는 장로·감독·집사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남자 교인 중에서 교인들이 추천하여 제비뽑기로 선출합니다. 큰 공동체는 8명, 적은 공동체는 4명까지 교인들이 추천하여 제비를 뽑습니다. 그들이 하는 제비뽑기 방식은 추천된 사람 수 만큼의 성경책 중 한 성경에 잠언서 16장 33절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구절을 적고, 이 성경책을 뽑은 사람이 직분자가 됩니다.

그러나 제비뽑기로 직분자를 결정할 때 일반적으로 축하 인사는 일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내는 숙연해지고 직분자로 선출된 자나 선출되지 않은 자나 모두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선출된 직분자로서는 직분의 엄정성 때문이기도 하고, 선출되지 않은 자나 다른 교인으로서는 그 짐이 너무나 무거운 것임을 알기에, 선출된 자에 대해 연민의 눈물을 흘립니다.

아미쉬 공동체라는 책에 소개된 글에 따르면 아미쉬가 아닌 사람이 자기 이웃이 감독으로 선출된 것을 알고 축하를 해준 적이 있는데, 그 축하를 받고 새로 선출된 감독과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는 글이 있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에서 벌어지는 총회장, 감독회장 선거에서의 이전투구나, 설령 제비로 뽑혔다 해도 모 교단처럼 신문에 광고하고 감사 예배드리는 풍경을 보면 참으로 착잡합니다. 또한 목사 안수나 장로 혹은 권사 취임식에서 축하와 부조 접수대를 보면 참으로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아미쉬 목사(minister)는 글자 그대로 철저한 봉사자(minister)이며 보수를 따로 받지도 않고 교회 의사 결정 구조에서 특권을 누리지도 않습니다. 건강이나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종신직입니다. 아미쉬 목사는 자기 교회에서나 혹 아주 드문 경우 다른 교회에 가서 설교한다고 할지라도 사례비를 일체 받지 않습니다. 그 대신 교인들은 그 목사에게 훨씬 더 소중한 것을 줍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사랑과 존경, 권위와 순종'을 보여 줍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아미쉬 목사들의 어깨는 너무 무겁습니다. 글을 읽다가 아미쉬 목사가 자살한 사건에 대한 글을 읽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아미쉬 사람들은 말 그대로 소박한 사람들이고, 미국에서도 이혼이나 자살이라는 것이 거의 없는 사람들인데, 목사가 자살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살한 목사는 새로 선출된 지 얼마 안 된 목사였습니다. 선임 동료 목사가 자기 일기장에 썼다는 글을 읽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설교가로서 목자로서 그 짐을 엄정하게, 무겁게 생각한 것입니다. 아미쉬 목사가 설교를 할 때는 절대 노트를 보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만 가지고 설교하고, 하나님 말씀만을 선포합니다. 설교 때 읽지도 않은 자료를 어디 자료집에서 찾아 예화를 말하는 경우 따위는 없습니다. 자기 말을 하면서 하나님 말로 포장하는 설교는, 심지어 다른 설교 자료를 그대로 하는 설교는 아무 책임감도 엄정함도 없을 것입니다. 목사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고 할 적에 그 엄정함과 무거움은 상상이 가고 남습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설교하면서, 마음 속 다짐한 한 가지는 일체 주석 책 외에는 어느 누구의 설교도 참고로 하지 말자이고, 설교는 '나 자신에게 먼저 하자'입니다. 설교해 온지 20년이 지났습니다. 집사람은 이전과는 내용도 많이 변하고 은혜로워졌다고 합니다만, 정말로 갈수록 설교가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기현 목사님의 '나 목사 하기 싫어'라는 글에 많은 공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나는 지난 20년 동안 목회보다는 농민운동과 생협운동을 주로 했고, 진보적 이데올로기가 신학보다 더 우선이었기에 다분히 관념론적인 신학을 우습게 여고 공부를 게을리 해 더 그렇습니다. 아마 바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교통이 아주 나쁜 이곳에 저를 철저히 가두셔서 처음부터, 기초부터 다시금 훈련시키고 공부시키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곳 연평교회는 너무나 좋은 신학교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삯꾼이 아닌 목사로서 연단되고 훈련되기를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재일 /  예장생협대표·연평도 연평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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