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27 00:05

고난주간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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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의 의미


사순절을 뜻하는 영어 렌트(Lent)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 Lang에서 유래된 말로, 독일어의 Lenz와 함께 '봄'이란 뜻을 갖는 명칭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40일간의 기념일'이라는 뜻의 희랍어인 '테살코스테'를 따라 사순절로 번역한다.



이는 부활 주일을 기점으로 역산하여 도중에 들어있는 주일을 뺀 40일간을 주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 묵상하며 경건히 보내고자 하는 절기이다.



한편 '40' 이란 수는 예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시험 받으심, 40일간 시내산에서의 모세의 금식, 이스라엘의 40년간의 광야 생활, 예수의 부활에서 승천까지의 40일 등과 같이 성경에 여러 번 고난과 갱신의 상징적 기간으로 등장한다.



이에 고난 주간을 포함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의 구속을 위해 수난을 당하신 사건에 담긴 구속사적 의의를 살펴보며 자신의 신앙을 재 각성하고자 비교적 긴 40일간의 절제 기간을 갖는 것이 바로 사순절이다.




고난주간의 묵상


제 1일 (종려주일) 예루살렘 입성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마가복음 11:1-11)


종려주일은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예수께서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펴고 한편, 손에들고 흔들어 축하하였듯 고난을 향한 예수님의 결단을 찬송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종려나무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사탄을 대적하는 상징이되며,번영과 (시92:12), 아름다움 (아7:78)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제 2일 (권위의 날) 성전을 청결케 하심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마가복음 11:15-19)


당시 성전 안에서는 명절 때 희생의 제물로 쓸 짐승과 향유, 그 밖에 필요한 물품을 매매하였고, 성전 안에서만 쓰는 유대 화폐를 교환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인들, 돈 바꾸는 자들과 결탁한 제사장들은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하였으며, 이로 인해 성전은 완전히 시장과 같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내어 쫓으시며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마가 11: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참 제사장의 자격으로 더러워진 성전에 대해 격분하시고 이를 깨끗케 하신 것이다. 이것은 성전 뿐 아니라 온 세계를 성결케 하시려는 하나의 표징이 됩니다.


나의 신앙은 혹시 이기주의, 상업주의에 젖어 있지 않나요?


하나님의 성전을 참으로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제 3일 (변론의 날) 과부의 두 렙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계에 넣는 모든 사람ㅁ보다 많이 넣었도다…” (마가복음12:41-44)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셔서 그들의 연보 넣는 것을 지켜보셨다. “한 과부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습니다. 이 때 예수께서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평범한 것 같은 이야기에서 실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강조되어 있는 점에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양보다는 질을, 형식보다는 중심을 중요시 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아 주실 만한 것인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헌금은 어떤 것일까요? (고후9:7,8:12)


다음의 말씀을 명상해 봅시다. “많은 사람들은 지갑으로만 바쳤지만 그녀는 마음으로부터 바쳤습니다. 이는 습관을 쫓아 드리는 것과 사랑으로 드리는 것의 차이입니다.”



제 4일 (음모의 날) 한 여인의 헌신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마가복음14:3-9)


예수께서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예수께 나아와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향유는 300 데나리온에 팔 수 있다고 하는데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보통 하루 품삯에 해당한다. 그 만큼 이 향유는 무척 비싼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여인에게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충동을 볼 수 있다. 제자들의 불평과 비난 속에서도 예수께 향한 그녀의 사랑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 일을 주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주님을 위하는 데 따라야할 자기희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함”과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의 말씀에서 '봉사의 기회’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봉사해야 할 일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 5일 (준비의 날) 최후의 만찬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가복음14:22-25)


예수께서는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드셨습니다. 이는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을 희생해 제자들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실 것을 말씀으로만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찢기실 자신의 몸과 흘리실 피로 속죄를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만찬 때 예수께서는 한 사람의 제사장으로서 그의 영원한 영혼을 흠 없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최후의 만찬에 참여한 제자들의 심정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 속죄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제 6일 (수난의 날) 십자가에 달리시고 운명하시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누가복음23:46)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가상칠언)을 명상함으로 십자가의 길을 떠올려 봅시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27)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내가 목마르다!"(요19:28) "다 이루었다!"(요19:30)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가상칠언 바로가기]


용서함 받은 우리는 역시 남을 용서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훗날 우리가 남길 유언을 생각해 봅시다.



제 7일 (예비의 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마가복음15:42-47)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청하여 자기를 위하여 새로 만들어 둔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제자였지만 이제는 관헌의 박해와 친지들의 차가운 눈총을 무릎 쓰고 용기 있게 행동했습니다. 그는 당당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 인도를 요구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자신이 무덤에 들어가심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악의 권세를 물리치시게 되셨다. 그는 무덤의 어두움을 제거하셨으며 그 공포를 영원히 쫓아 버리셨다. 죽음이 그 쏘는 살로 그리스도를 상하게 했지만 부활하심으로 이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그 위력을 끼치지 못하게 만드셨습니다.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기독교인은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요?





종려주일에는온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이들을 기억하고 위하여 기도하여 주며, 고난을 기쁘게 감당하는 결단의 시간을 가짐이 좋겠습니다.


고난과 죽음을 미리 아시면서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용기를 생각해 봅시다.


오늘 내 마음 속을, 우리교회를 예수님께서 오셔서 둘러보신다면 무엇을 느끼실까요?


가상칠언 묵상A.D. 33년 4월 초순 금요일 일기 화창한 어떤 봄날 예루살렘성 밖으로 세 사람의 십자가의 죽음 행렬이 엄숙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목적지는 히브리말로 골고다요, 아람어로 된 말을 해석하면 해골이란 동산인데 여기까지 와서 각자가 메고 온 십자가에 이 세 사람을 달았습니다. 그 중에 중앙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제 1언의 말씀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예수님은 처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신 분입니다. 구약에는 아버지란 말이 없으나 예수님은 아버지라 부르시면서 우리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주기도문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도는 아버지가 두 분이십니다. 육신의 아버지와 영혼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름은 사랑의 인격적 참여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시게 될 때 내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 용서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방법입니다.


제 2언의 말씀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우리는 양쪽에 달린 두 강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양쪽에 십자가에 달리고서도 그 죄를 깨닫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림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강도는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39절)고 하였습니다. 이 고백이 진심이면 얼마나 다행이었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에 보면 비방하였다고 했습니다. 객관적이요, 비판적이요, 야욕적인 말이었으니 얼마나 불행합니까? 현재도 십자가를 신앙적으로, 주관적으로, 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강도처럼 비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했습니다.


지금도 강도처럼 죽어가면서도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비방하는 자가 많습니다. 고난과 십자가에서는 선한 말이 나오기 힘든 모양입니다만 중앙에 계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고 구세주임을 알았다면 구원을 호소하였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강도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 회개는 우리가 지고 가야할 또 하나의 십자가입니다. 마음의 강팍함을 주님이 깨뜨리실 때 거기에 순종하면 주님은 새로운 소망을 선물하실 것입니다.



제 3언의 말씀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27)



세 번째 주님의 눈동자가 집중된 것은 여기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계신 곳입니다. 25절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클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등 네 여인이 울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울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면서 부탁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격은 여인입니다.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게 되어 남편에게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제 예수님을 먼저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은 한없는 슬픔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제 4언의 말씀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말할 수 없는 고뇌에서 비롯된 절규였습니다. 죄 없는 자가 정죄를 당하고 허물없는 자가 박해를 받으며 은혜 베푸는 자가 잔인하게 죽어가는 일이 역사상 처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죄를 홀로 지시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시는 순간 주님으로서는 매우 심각한 세 시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주님은 세상에 대하여는 더 할 말씀이 없고 성경에 응하기 위한 말씀을 하실 뿐이었습니다. 이런 절규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도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몸을 입고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



제 5언의 말씀 : "내가 목마르다!"(요19:28)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입증하고 신성(神性)을 나타내는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내가 목마르다" 하심은 곧 목마른 인생을 부르시는 뜻도 있습니다. 인생은 어디서 무슨 물을 마셔도 그 심한 갈증을 해소할 길 없으나 주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한 갈증을 해소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 : 1).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 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6언의 말씀 : "다 이루었다!"(요19:30)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가죽 채찍으로 서른 아홉 대의 매를 맞으셨습니다. 가죽 채찍 끝에는 다섯 갈래의 가지가 있고 그 가지마다 낚시와 같은 쇠고리가 달려 있어서 가죽 채찍이 살에 닿을 때마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터져 엉켜 붙었습니다.


또한, 가시관을 쓰신 머리와 대못에 박힌 양손과 양발에서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무지한 군병의 창에 옆구리를 찔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의 옷은 군병들이 제비 뽑아서 나누어 가졌고, 벗기운 채로 주님은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 계셨습니다.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죄도 없으시면서 가장 죄 많은 자처럼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것입니다. 그가 하실 일을 이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제 7언의 말씀 :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예수님은 아버지란 말씀을 즐겨 사용하셨으니 산상설교 가운데서 17번, 유월절 다락방에서 45번(요 14, 16장), 요한복음 17장에서 6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에서 마지막 말씀을 아버지로 끝맺으셨습니다. 아버지란 명칭은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자신을 갖게 하는 이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들은 아무리 값진 것이라 해도 아버지 손에 맡기고 부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체로부터 분리되려는 찰나에 있는 그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셨습니다.

  • 초림 김미자 2007.03.27 00:53
    고난주간에 다시한번 묵상해 봅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지만 위대한 승리를 위한 영광의 길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멸시와 조롱을 받았느냐에 초점이 있는것이 아니라 이 십자가를 통해 누구나 변화될 수 있다는 신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요. 바로 예수님의 고난은 나를 변화 시킬 수 있다는 선포입니다. 그 분의 고난이 머리와 마음에 깨달아지는 것을 넘어서 나를 쳐서 복종시키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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