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스는 평생 미국의 대도시의 흥망성쇠를 연구하고 대도시의 변천을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제안한 사람입니다. 도시 설계자를 설득하고 시장이나 전문가의 도시계획을 비판하거나 격려한 실천적인 활동으로도 유명한 분입니다. 이분의 주장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거대 개발 계획을 통렬히 비판한 것입니다.


제이콥스는 자신이 평생 살아온 도시의 주변부나 오래된 구역들을 꼼꼼히 관찰하고 그 생명력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빈민가나 저개발지역이라고 하면 가난, 불결함, 인구밀집, 범죄 등을 연상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속에는 놀라운 역동성과 생명력이 숨 쉬고 있어서 오히려 도시의 매력이 더 잘살아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건물이 낡고 거리가 비좁고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 모든 것이 열악하고 부족해서 때로는 사는 게 힘겹기도 하지만 그런 열악한 조건이 상호부조와 접촉을 증대시키는 기능을 해 오히려 동네를 생기 넘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살기위해 서로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이 오히려 도시의 다른 구역에는 없는 강한 연대의 문화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제이콥스는 이런 동네를 일컬어 ‘생활의 활발한 혼란이 있는 곳’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잘 정비된 대도시가 편리할수록 삭막해지는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인간적인 삶터라는 것입니다. 거대 계획으로 가난한 동네들을 정비하려는 발상의 문제점은 결과적으로 그런 계획이 도시의 근본적인 생명력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도시의 생명력은 인간과 인간끼리 만나고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온갖 것들을 말하는데 이런 문화의 즐거움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하고 자란 엘리트들이 정책결정자가 되면 더 설득하기 힘들다는 게 제이콥스의 개탄입니다. 예컨대 첨단의 도시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도 않고 하찮기 짝이 없는 것들이지만 달동네나 오래된 주택가에는 골목문화라는 것이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자동차가 골목을 가득 메운 후에 언제부턴가 아이들 사이에서 숨바꼭질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숨바꼭질이 사라진 것은 수 천 년 간 이어져온 인류의 놀이문화 하나가 사라졌다는 의미 이상으로 심각한 현상이라고 학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달동네에 가면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이 더러 눈에 뛴다고 합니다.


자동차가 활보할 수 없는 거리는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보존해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예에 불과하지만 요컨대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재개발 문제는 완전히 다르게 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삶터를 도면위에서 재구성 할 수 있다는 도시 설계자들의 발상이 참으로 무서운 것은 인간의 삶을 극히 추상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그 태도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잘살든 못살든 사람이 사는 동네가 오랫동안 어딘가에 존재해왔다면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서 나름대로 자족하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시장이 서고 필요에 따른 온갖 가게와 시설이 생기고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넘치는 것은 넘치는 대로 흥정하고 거래하면서 작은 경제의 단위를 형성해온 것입니다. 이런 일상의 세부는 다양한 삶의 기능들이 얽혀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발생하고 변화하는 유기적 복합체이기 때문에 거시적인 경제의 통계로는 절대로 포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래시장의 난전에서 동전들이 오고가는 것은 거시경제학자들에게는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그런 거래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관계를 맺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매우 복잡하고 섬세하게 얽혀있는 이런 작은 경제는 소사회를 끊임없이 구축하고 이 소사회는 독특한 상호부조의 문화를 만들면서 위기에 대응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공허한 대도시가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싱싱한 삶의 이야기들이 샘솟는 곳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도시정비라는 이름으로 포크레인이 낡은 집들을 허물 때 무너지는 벽들과 골목과 작은 나무 아래서도 한때는 사람이 태어나고 죽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던 인간의 온갖 사연들이 아로새겨졌던 곳이라는 것을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번듯하고 미끈한 것을 좋은 도시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보이지 않겠지만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담긴 공간인 것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어온 도시의 마을들은 이처럼 인간문화의 살아있는 덩어리이기 때문에 철거 자체도 말할 수 없이 반문화적인 것이지만 단기간에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도시계획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제이콥스는 도시계획 입안자들이 지원하고 정비해야할 것은 일상의 작은 필요와 그 복합적 연결에 섬세한 주의를 기울이고 점진적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도시계획은 아무리 짧아도 한세대는 걸려야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절대 단기간에 밀어 부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려 깊은 섬세한 관찰과 끈기 없이 단기적으로 투입되는 모든 자본은 궁극적으로 ‘재난의 돈’이 되어 오히려 도시를 황폐화 시킨다는 것이 제이콥스의 경고입니다. 제이콥스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도시는 주민들이 자신의 삶에 애착을 느끼며 한곳에 오래 머물러 살 때 맛보는 생의 지속성과 안정감을 부지불식간에 느끼며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집과 동네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부수고 다시 건설해서라도 가치를 높여야 하는 재산의 가치밖에 지니지 못하는 우리 현실에서 이런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싶지만 용산 참사는 사람살이의 한 근본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저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우리가 좀 더 근원적인 관점에서 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재개발문제에 얽힌 복잡한 정치경제적인 원인 외에 가난의 문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는 문제가 없는가 하는 점입니다. 가난의 문화는 정말 제거하거나 극복해야할 악일까요. 탄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가난한 사람을 시혜를 베풀거나 동정해야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난은 구원해야할 어떤 것이 아니라 구원이 솟아나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것을 오늘의 우리가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끊임없이 논란이 될 가난과 낙후와 불편을 만드는 사회 문제는 단순히 우리 사회의 경제적 정의의 차원에서만 볼 수 있는 문제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말이라도 보태고 지원해야 할 때 오히려 이런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냐고 탓하는 제 속의 다른 목소리를 누르고 이런 답답한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빌려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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